티스토리 툴바

달력

052012  이전 다음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학교에서 돌아와 간식거리로 사온 소세지(-_-;)를 데울 물을 올려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김훈의 기사가 눈길을 끈다. 그의 신작 소설 <공무도하> 출판 기념 독자와의 대화란다. 처음 읽은 김훈의 소설은 <현의 노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의 문체는 <현의 노래>를 내려놓자마자 다른 장편 소설들을 주문하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런데 소설들을 읽어가면서 점점 알 수 없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는 '진짜'인가? 그리고 오늘 이 기사를 보니, 왜 그런 의구심을 갖게 되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동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했다. 성령에 의지하라고 했다. 엄마들도 아이에게 시험을 잘 보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시험을 잘 본다해도 문제는 남는다. 수능시험은 등급을 정해 밑에 있는 아이들을 잘라내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기도를 해도, 애끓는 모정이 기도 한다고 해도 해결할 수 없다. 목사님도 엄마도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앞에 무력하다



목에 턱 걸리는 부분은 맨 마지막 말이다. "목사님도 엄마도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앞에 무력하다"  그렇다. 수능이라는, 참 거지같은 제도 앞에서, 목사님이나 엄마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기도하는 일 뿐이다.  김훈은 새벽 6시에 교문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엄마들을 보면서, 제도 앞에 선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은, 내가 읽은 바로는, 이 엄마들에 대한 목격담인 것이다. 무력한 인간에 대한 목격담.

그래서 나는 그의 소설도 무력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은 그가 이 엄마들을 무력한 존재로 보는 그 만큼 정확히 무력하다. 변화가 없는 것은 무력할 것이고, 그의 소설은 해마다 수능이 계속되듯, 제도 앞에서 인간은 계속해서 무력할 것인 한에서 변화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이, 다른 무엇이 아닌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제도-앞에서 스스로 무력해진다는 사실에서 그는 어떤 원초적 무력감을 느낄테고, 어떤 노력도 지금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제도 앞의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만큼, 제도는 강력해진다.

그런데 정말 이 엄마들은 무력한 걸까? 아니 자식들의 높은 점수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무력한 걸까? 그리고 우리는 이 엄마들을 무력하게 보아야 하는 걸까? 그럼 제도들은 얼마나 강한 걸까? 우리가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없을 만큼?

어린아이도 알 것 같은 문답을 해보자. 제도는 누가 만들었지? 우리가.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지?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저 심각한 질문에 비해 너무 장난스러운가? 오히려 여기까지 오니 나는 김훈이 이 단순한 문답을 놓치고 저 닳고 닳은 하소연을 진짜 문제인 양 쓰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만들었지만 우리 뜻대로 바뀌지는 않지 않냐고?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무력한 존재라고 하면 뭐가 바뀌지? 우리는 위안을 얻지만, 여전히 무력해진채로 남지 않을까?

한편 기사에서 이어지는 말은 되새겨 봄직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내게 있어 글쓰기는 문학이나 예술이기에 앞서 밥벌이를 위한 엄숙한 노동"이라며 "생업으로서의 글쓰기라는 세속의 가치와 현세적 질서를 경멸하는 자들을 경멸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속의 가치를 경멸하는 자들을 경멸한다"는 그의 말을 나는 맥락을 달리 해서 가져오고 싶다. 우리가 다른 세상을 꿈꾸자고 할 때, 그것은 지금의 세상에 대한 경멸에서 출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지금/여기에 뿌리박지 않고 다른 세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다른 세상이란 없으며 '현세적 질서'가 전부라는 사람들 만큼이나, '가짜'들 일 것이다.

원문보기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무력한가? 김훈에 대한 생각  (1) 2009/11/15
Posted by 치치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