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ONWEALTH』중 보장소득과 관련된 언급 (p.306~311)
“내진 보강 : 자본을 위한 개혁주의적 프로그램 Seismic Retrofit : A Reformist Program for Capital”
(5.3절, PRE-SHOCKS ALONG THE FAULT LINES 가운데)
1.
위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이 부분에서 저자들은 자본을 위한 개혁주의적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그리고 보장소득은 이 개혁주의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등장한다. 도대체 왜 하트와 네그리가 혁명이 아닌 자본을 위한, 그것도 개혁주의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연스런 궁금증은 잠시 제쳐두고 우선 그들의 논의를 따라가보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의 주제를 위해서 보장소득이 이 프로그램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짚어보도록 하자.
2.
저자들은 자본이 다른 것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데 이르렀다고 한다. 물론 케인즈와 같은 걸출한 경제 사상가가 이러한 자기-파괴로부터 자본을 구출하려 시도했지만, 오늘날 케인즈식의 처방은 “더 이상 약효가 있지도 않고 심지어 때때로는 이 질병을 키우기까지 하는”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것이 개혁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오늘날 전지구적 귀족정이 이러한 개혁을 수행해낼 수도 없으며, 설사 그들이 그렇게 한다고 하여도 그들은 “자본 너머 새로운 생산 양식”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위기는 그것의 객관적인 모습, 예컨데 신용위기, 인플레이션, 주택가격의 하락, 통화위기 등등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그것의 주관적인 모습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것의 주관적인 모습이란 “생산적인 주체성들을 가로막고 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애물들이다”. 예컨데 공통적인 것에의 접속을 막는 것 등등. “가장 시급한 개혁은 공통적인 것의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계발과 협력적 사회적 네트워크의 창안을 위한 필요품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들이 생각하는 오늘날 위기라고 이야기되는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의 본령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그것은 현 자본주의에서 지배적인 생산 양식인 삶 정치적 생산에 자본 스스로가 장애가 되고 있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위한 개혁의 프로그램은 바로 이 삶정치적 생산의 차원에서 생산력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된다.
즉 “첫 번째 종류의 개혁들은 삶정치적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기반구조(infrastructure)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기반구조로서 저자들은 먼저 깨끗한 물, 기본적 위생 시설, 전기, 음식 등등의 충분한 물리적 기반구조를 든다. 그러나 이러한 단지 살아있음만으로 삶정치적 생산을 이끌어낼 수 없음은 자명하다. 따라서 저자들은 “사회적이고 지적인 기반구조 또한 삶정치적 주체성들을 지원하기 위해 요구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오늘날 삶정치적 생산이 비물질적, 정동적, 언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뒷받침되어 있다. 이러한 사회적이고 지적인 기반구조로서 저자들은 교육을 예로 든다. 나아가 저자들은 이러한 교육의 귀결로서 “정보와 문화의 열린 기반구조가 다중의 생각하고 다른 이들과 협동하는 능력을 완전히 계발하고 실천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렇게 열린 공통 기반구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금이 필요하다. 여하튼 기반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열린 기반구조 하에서는 이를 이용한 수익창출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를 보충할 지원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기금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들은 이러한 “물리적, 사회적 그리고 비물질적 기반구조의 개혁에 더하여, 또 다른 종류의 개혁은 삶정치적 생산에 요구되는 자유를 제공해야만 한다”고 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개혁, 즉 자유를 위한 개혁을 주장한다. 저자들은 자유를 위한 개혁과 관련하여 자유를 공간의 차원과 시간의 차원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먼저 공간적 자유를 위한 개혁은 바로 이동의 자유(freedom of movement)가 된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유로이 국경을 가로지르고, 또 원하는 곳에 정착하여 살 수 있는 자유이다. 삶정치적 생산에서는 만남, 관계 맺음 등이 중요한 생산력의 원천이 되는데, 이동의 자유는 바로 이것을 늘려줌으로써 삶정치적 생산의 생산력을 증대시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적 자유와 관련하여 요구되는 개혁이 바로 보장소득이다.
“자유의 두 번째 개혁은 시간과 관련된 것으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비자유시간의 가장 주요한 부분은 노동에 묶여있다. 사장의 명령을 포함하여, 삶정치적 노동의 자율성에 대한 모든 침해는 생산성에 대한 장애물이다.(사실상 삶정치적 시대에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가―콜 센터에서, 사무실 책상에서, 들판에서, 혹은 공장에서 일하기―를 측정하는 것이 착취의 하나의 좋은 척도가 된다.) 시간의 자유를 부여할 개혁은 노동여부와 상관없이 국가적 혹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모두에게 지불되는 최소의 보장 소득의 구축이다. 노동으로부터 소득을 분리시키는 것은 모두에게 시간에 대한 더욱 많은 지배를 줄 것이다.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저자들은 보장소득을 경제학적 정의 (부는 넓게 산포되어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생산되며 따라서 그것을 보상하는 임금은 사회적으로 동등해야 한다)와 사회적 복지 (현시대 우리의 경제에서 완전 고용에 가까운 어떤 것도 불가능하기에 소득은 일자리 없이 남겨진 이에게도 제공되어야 한다)에 기초하여 보장소득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모든 인구가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최소한을 가진다는 것이 자본의 이익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중에서 자율성과 시간에 대한 지배를 부여하는 것은 삶정치적 경제에서 생산성을 기르는 것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309-310)
이러한 공간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는, 그리고 이들을 위한 이동의 자유와 보장소득은 소통과 협력을 통한 다중의 생산적 역량의 발현을 위한 사전조건이 된다. 따라서 여기에는 실제적인 능력의 성장이라는 또 다른 계기가 추가되어야 한다. 즉 “삶정치적 생산을 위해 요구되는 자유는 또한 사회적 관계들을 구축하고 자율적인 사회적 기구들을 창조할 힘을 포함”하며 저자들은 이러한 능력의 계발을 위해 “참여 민주주의의 메카니즘의 구축”을 제안한다. 이러한 민주주의에서 다중들은 “사회적 협력과 자치를 배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이 저자들이 밝히는 “자본을 위한 개혁주의적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이 프로그램은 분명 자본을 위한 것이지만, 이미 저자들이 말한 바와 같이, 이 프로그램이 자본에서 시작될 것이라 보장할 순 없다. 오히려 “개혁들은 오로지 투쟁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며, 이러한 투쟁들은 이미 진행중이다.
3.
이제 마지막으로 앞서 미루어두었던 질문에 대한 저자들의 답변을 들어보자. 왜 저자들은 다중의 혁명을 위한 책에서, 자본을 위한 개혁주의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는가? 저자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의혹으로 가득찬 눈초리로 자신들을 향해 이러한 질문을 던질 것을 예상하고 답변을 준비해놓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에는 당연하다고 하는 만큼 오래된 혁명 혹은 이행에 대한 어떤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저 세상을 가리키는)혁명과 (단지 이 세상을 좀 더 살만할 것으로 바꿀)개혁은 분명히 구별되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관념. 저 세상은 이 세상이 말끔히 청소된 공터에서야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관념. 요컨데 자본의 세상과 노동의 세상은 엄격히 구별되며 적에게 해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득이 된다는 관념. 저자들은 이러한 관념에 문제를 제기하며, “자본을 위한 개혁주의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일의 의미를 밝힌다. 이는 보장소득과 관련하여서, 보장소득을 주장하는 것이 오늘날의 혁명과 이행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몇몇 독자들은 이 시점에서 우리의 혁명적 의도들을 의심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자본을 구할 개혁들을 제안하고 있는가? 그것은 혁명을 단지 연기시킬 뿐이지 않는가? 우리는 여기서 이행에 대한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분명히 우리의 것은 다음과 같은 붕괴 이론들과 다르다. 즉 “사태가 나빠질수록, 상황은 좋아진다 The worse things are, The better things are”와 같은 슬로건을 들고, 파국적 위기로부터 출현하는 자본주의적 지배의 종말을 그리고 있는 붕괴 이론과는 다르다. 그것은 또한 국가의 조절, 통제, 그리고 사회적 생산의 관리를 증가시키면서 사적인 것에서 공적인 것으로 부와 통제의 이전을 내다보는 사회주의적 이행 관념과도 다르다. 대신에 우리가 갖고 작업하고 있는 이행의 종류는 사적이고 공적인 통제 모두로부터 다중의 점증하는 자율성을 요구한다. 또한 협력, 의사소통 그리고 사화적 만남들을 조직화함에 있어서의 교육과 훈련을 통한 사회적 주체들의 변형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공통적인 것의 점진적인 축적을 요구한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자신의 무덤파는 일꾼을 창조하는 방식이다. 즉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고 자기 자신의 생존을 보존하려 하는 가운데 그것은 반드시 생산적 다중의 점증하는 힘과 자율성을 길러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힘들의 저 축적이 문지방을 넘을 때, 다중은 자율적으로 공통 부(common wealth)를 다스릴 능력을 갖춘 채 나타날 것이다.”(p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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